2026.07.17 (부제:결국 인간)
1)
1.우주 덕분에 간 무대인사(태어나서 처음 가봄)
2.‘조카 꿈에 들어간 것 같다‘는 평이 있었는데 맞는듯
3.그렇다고 재미없었는거? 난 재밌었음
4.무엇을 원하는가에 따라서 평은 달라질 것 같음
5.시원한 액션,빵빵한 사운드, 도대체 뭘 전개하려는걸까 하는 궁금
6.한국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이정표 아닐까
7.속편 나오면 나는 볼 것 같음
8.대사 중에 ‘시발‘을 ‘존나’외치는데 난 오히려 현실성 있었음.
9.현실에서 실제로 마주하면 저 단어말고 뭘 외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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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요일날 전쟁기념관에 다녀왔다. 아마 수십번은 이 거리를 지나갔을 것이다. 인간이 참 신기한게 본인이 관심 가지기전에는 세상에 존재하더라도 인식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인지 심리학적으로 보면 본인이 초점 맞추는 것 밖에 보지 못하는 거라고 대답할 듯하다. 세상의 모든 걸 받아들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견디지 못하니.
평일이라서 그런건지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많았다. 한중일 삼국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 몇가지 사건들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데 한국전쟁도 그 중 하나였다. 한국전쟁에 초점이 맞춘 공간은 아니었다. 정말 구석기부터 현대까지 다 전시해두었는데 그래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요즘 드는 생각은 무엇을 경험하고 나서 즉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새로운 음식을 경험하고, 좋은 대화를 하는것도 중요한데 그 이후에 내가 어떤 질문을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 공간은 내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었다. 단순히 한국과 북한의 전쟁이 아니었다. 이를 파악하려면 (아직 진행 중이지만) 한국,북한,중국,러시아,미국,대만,일본의 정세와 상황을 이해해야지만 파악을 할 수 있다. 특히나 국제정치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가장 강렬했던 것은 참전용사분들의 인터뷰였다. 예전에 한 영상에서 이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세상을 이해하려 하고, 역사와 정치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이 분들의 이야기가 그저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특히나 자유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분들에 대한 대답에서 조금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펜만 돌리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자신의 인생과 전우들의 목숨을 걸고 바친 전쟁터에서 얻은 자유에 대한 정의. 이론적 거창한 수사보다 경험에서 나오는 한 문장을 더 신뢰한다.
- 자유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항시 선한 마음을 갖고 남을 위할 줄 알고, 서로 존중하고 대화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건 인간의 근본입니다.
- 저는 다음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고, 다시는 이 땅에서 같은 비극을 겪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젊은 세대여, 자유는 쉽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용기와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걸으십시오. 포기하지 말고, 서로 도우며 함께 나아가십시오.
-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삶은 마음껏 누리십시오. 하지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만은 다시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 삶을 충실히 살아가십시오. 두려워하지 말고 경험하십시오. 마음을 열고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이 본 것을 이해하려 애쓰십시오.
서양의 토대는 자유이다. 자유 민주주의. 동양에 처음 자유가 들어왔을때 어떻게 받아들이는에 대한 문장을 들은 적 있다. “서로의 뺨을 때릴 수 있는 것도 나의 자유이다”였다. 진격의 거인에서도 에렌이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 ‘자유’이고. 세상에는 어떻게 해도 정답을 찾을 수 없는 그런 개념들이 있다. 그렇다면 여러 의견과 생각들 중에서 내게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믿으면 되지 않을까.
감사함 그리고 무서움이 동시에 들었다. 3세대 전 한반도는 일제의 식민지였고 2세대 전에는 이념의 전쟁터였다. 하지만 지금 그 아래 세대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권을 가지고 전세계를 누비고 불과 70년만에 최빈국에서 경제,정치,문화,기술 적으로는 그 어떤 국가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올랐다.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우리가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이전처럼 국제정세에 휘말리게 된다면 얼마든지 다시 이념의 전쟁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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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다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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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한국은 독일을 이상적 모델로 선망했다 — 메르켈 시대의 성공(유로화·러시아 에너지·중국 수출·난민 수용)이 그 근거였다.
- 그러나 독일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폭스바겐발 제조업 위기, 2년 연속 역성장, 극우 정당 급부상, "유럽의 병자" 재소환.
- 왜 그런가 — 메르켈이 정렬시켰던 네 개의 축(환율·에너지·중국시장·인력)이 숄츠 취임 직후 동시에 무너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노르드스트림 차단, 탈원전 완료, 미중 갈등).
- 몰락의 성격은 정치적 선택의 누적이었다 —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는 이념적으로 밀어붙인 정책이었고, 관대한 복지·연금 구조도 정치적 관성의 산물이었다.
- 근본 원인 ① — 독일의 번영은 자체 경쟁력이 아니라 외부 조건(유로화·러시아 가스·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이었다.
- 근본 원인 ② — 에너지 전환조차 자체 역량이 아닌 이웃 나라(프랑스 원전·북유럽 수력)에 대한 무임승차였다("독일의 얌체 전략"), 그 결과 유럽 전역에서 반독일 정서 확산.
- 근본 원인 ③ — 고령화로 인한 부과식 연금·복지 시스템의 재정적 지속불가능성(2045년 예산의 50%가 연금 보전에 소요될 전망).
- 현재 독일의 대응 — 2025년 경제개혁 프로그램(감세·노동유연화·복지통제·관료주의 혁파·독일판 LH)으로 급격한 노선 전환, 이른바 "독일의 한국화".
- 결론 — 몰락은 숙명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결과였고, 지금은 그 선택을 되돌리는 국면이다. 한국이 참조해온 "독일 모델"은 특정 시기의 우연한 정렬이었을 뿐이라는 재평가가 필요하다.
독일에 유학을 가고 싶었고, 그 사회에서 살고 싶었다. 이 감정을 비유하자면 전 애인의 모습을 바라보는 느낌에 가깝지 않을까. 한때 너무 좋아했고 서로를 이상화했지만 어느 순간 각자가 가진 상황으로 인해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상대가 더 멋있게 더 즐겁게 살기를 바랬지만 처절하게 몰락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가 무리한 신념의 결과라는 것 말이다.
이상주의에도 여러 결이 있는 것 같다. 정말 말 그대로 유토피아 ‘이상‘에 초점이 맞추어진 사람. 현실과 위험성을 철저히 계산하고 그걸 감당하기 위한 ’이상‘을 쫓는 사람. 나는 후자다.
그리고 이걸 내 손으로 하는 건 상당히 이상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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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숫자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사람을 봐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를 더 고려하지 않으면 좋은 선수의 정의는 반쪽에 머문다. 바로 성실성과 품성이다. 현대 야구가 결과보다 과정, 현재보다 미래 가치, 표면적인 기록(스탯)보다 재현 가능한 능력을 중시한다고 해도, 그 과정을 실제로 유지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 자체다. 데이터는 선수가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했는지를 상당 부분 설명해준다. 그러나 그 선수가 같은 태도와 준비를 내일도, 다음 달도, 내년에도 지속할 수 있는지까지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그 사이를 메우는 것이 성실성과 품성이다.
성실성은 ‘열심히 하는 선수’라는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다. 루틴을 지키는 힘, 지속적인 몸 관리, 실패 이후 수정하는 능력,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태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도 준비 수준을 유지하는 힘까지 모두 포함된 개념이다. 좋은 툴을 가진 선수는 많다. 하지만 그 툴을 경기에서 꾸준히 꺼내 쓸 수 있는 선수는 많지 않다. 그래서 성실성은 재능을 반복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다. 숫자는 현재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어도, 그 성과가 내년에도 유지될지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바로 성실성이다. 성실성이 없는 재능은 순간적으로 빛날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 축적되기 어렵다.
품성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서 말하는 품성은 인성이 좋다는 뜻이 아니다. 야구에서의 품성은 팀 안에서 기능하는 능력에 더 가깝다.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자세, 코칭스태프와의 관계, 동료에게 미치는 영향, 위기 상황에서의 태도, 실패를 남 탓으로 돌리지 않는 습관, 팀의 리듬을 해치지 않는 균형감까지 모두 포함된다. 아무리 뛰어난 툴을 가진 선수라도 팀 안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그 가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품성이 좋은 선수는 자신의 재능을 팀의 승리로 연결시킨다. 그래서 좋은 선수는 단순히 성적이 뛰어난 선수가 아니라, 좋은 과정이 팀 안에서도 효과적으로 기능하도록 만드는 선수라고 봐야 한다.
조성환 전 두산 베어스 감독대행(현 KBS N 해설위원)은 선수의 품성을 설명하며 “내 옆에 있는 선수를 외롭게 만들지 않는 것”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그는 “야구장 안에서는 실패나 실수를 하는 선수가 항상 존재한다. 타자를 기준으로 보면 10번 중 7번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나보다 더 큰 실수나 실패를 한 선수를 보듬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팀”이라고 말했다.
<리빌딩, 강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 ‘이게 비단 야구에만 해당할까’싶다. 결국 회사도 선발하고, 육성하고, 운영하고, 경영한다. 야구장과 회사라는 필드만 다른 뿐. 신기한 건 아무리 세분화된 스탯이 있고 잠재력이 있어도 결국은 그걸 만개할 수 있는건 본인 뿐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