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8 금요일 (부제: 실패에서 배우라는 것)
1)
박소령님의 스토리에서 봤던 게시물. 일론 머스크가 고통에 관해 이야기한 글이었다. 짧게 설명하면 “세상을 바꾸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똑똑함이 아니라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다.”
세상은 자주, 쉽게 이야기한다. ‘실수에서 배워라’, ‘고통을 견뎌라’. 그런데 문제는 실수를 하고 고통을 느끼는 것에 있지 않다고 본다. 실수를 하고 고통을 느낀 후에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심연에 처박혀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자신을 만나 이야기하고, 이를 바탕으로 말도 안 되는 상승을 보일 것이다. 지옥에서 돌아온 영웅이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심연에 처박히고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한다. 숨을 쉬지 못해 고통의 물속에서 그대로 익사한다. 지옥에서 죽은 사람이다. 즉, 진짜 문제는 지옥을 보고 살아 돌아오면 영웅이 되지만, 지옥을 보고 살아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도 무엇이 다를까를 고민해 보면, 유년 시절과 기질이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싶다. 일론 머스크도 평범한 유년 시절을 보내지 않았다. 남아공 출생의 사업가 아버지와 모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그의 전기를 보면 평범함에서 상당히 벗어난 유년 시절을 보낸 걸 알 수 있다. 남아공에서 태어나 10대 후반에 캐나다로 이민을 왔고, 다시 미국 대학으로 편입한다. 이후 스탠퍼드 박사과정에 들어갔지만 때려치우고 창업을 한다.
결국 유년 시절과 기질로 형성된 에너지가 빛이 들어오지 않는 저 깊은 심해에서, 파도가 찰랑이고 햇빛이 내리쬐는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게 하지 않을까. 그리고 고통에도 일정한 역치가 있다고 믿는다. 운동을 할 때도 내 몸이 견딜 수 있는 한계 지점까지 하면 단단한 근육이 되고, 내 힘이 되지만 그 한계 지점을 넘으면 뼈가 부서지거나 근육이 파열된다.
20대를 시작할 시점에 정신과 상담을 받았는데, 당시 주치의 분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 무너져서 다행이지. 나중에 40, 50대에 무너지면 그때는 더 크게 휘청여서 다시 일어서기 매우 힘들다.” 당시에는 ‘내가 지금 죽을 만큼 힘든데 이건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다. 어쩌면 지하 깊숙이 들어갔던 그 시점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 높은 건물의 무게를 견디게 만드는 지반 공사가 아니었을까.
아, 물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일론 머스크를 닮아야 할 필요도, 좋아할 필요도 없다고 믿는다. 빼먹을 거 빼먹고, 버릴 거 버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