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9 일요일 (부제: 문해력)
1)어제 AI에게 맡긴 글은 어디까지 나의 글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마지막으로 내가 수정했다면 내 글이고, 마지막으로 수정한 주체가 AI라면 제가 쓴 글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맥락의 글을 예전에도 쓴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생성형 AI가 쓴 글은 말 그대로 생성형이기 때문에 글 자체가 단단해지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글을 쓴 다음 교정을 하는 것을 비유하자면, AI의 글은 교정이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쓴 글에 가깝습니다. 제 글을 아무리 학습시켜도 제 글의 스타일이 드라이하고 단정하고 정치할수록 그 글을 흉내내지 못하고 좀 우스워집니다.
그래서 초안 작성을 시킨 후 제 스타일을 학습시켜서 다시 쓴 글을 본인이 다시 손보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러면 AI를 쓸 필요가 없지 않느냐 그것도 귀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품질의 희생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1차 자료를 추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때 AI를 씁니다.
AI는 정확한 데이터 없이는 거짓말을 하도록 설계된 존재입니다. (자신이 거짓말을 한다는 메타인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정확한 1차 자료와 정보를 얻는 게 AI 사용의 출발점입니다. (1)
그 다음 그 자료를 해석할 때 AI 가장 많이 쓰는데, 해석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해석한 리서치가 있다면 가장 좋습니다. (2)
AI는 원안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남의 글을 분석해 헛점을 찾아낼 때 역량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
따라서 1차 자료 추출과 함께 교차 검증을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됩니다.
저의 경우는 4개의 AI의 API를 사용해서 1차 검증과 교차 검증을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았는데, 그걸 만들면서 AI의 속성에 대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문해력에 대해서는 동감합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사회, 기업의 구조가 AI가 기본이고 인간은 그 결과를 검증하는 것으로 역할이 바뀔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인간을 AI가 도와주는 게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는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문해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해력의 차이는 지금 AI를 사용하는 스킬에서도 많은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2)아래는 Claude의 답변
좋은 교환이네요. 세 가지 순서대로 제 생각을 정리해볼게요.
1. “스타일 학습 후 다시 손본다”의 실체
대표님의 워크플로우는 세 단계로 읽힙니다. ① AI에게 자료를 주고 초안을 뽑는다 → ② 본인이 쓴 글 여러 편을 예시로 넣어 “이 스타일로 다시 써라”고 시킨다 → ③ 그 결과물을 본인이 문장 단위로 고쳐 쓴다. 핵심은 ③이 ‘검수’가 아니라 ‘퇴고’라는 점이에요. 상현님의 현재 D단계는 데이터와 논리를 점검하는 검수에 가깝고, 대표님이 말하는 건 문장을 직접 뜯어고치는 퇴고입니다. “AI 글은 교정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쓴 글”이라는 비유가 그 얘기죠. 스타일 학습을 시켜도 드라이하고 정치한 문체일수록 흉내가 안 되니, 마지막 문장 손질만큼은 사람이 해야 글이 단단해진다는 겁니다. 결국 대표님 기준으로는 이 마지막 퇴고를 했느냐가 ‘내 글’의 경계선이고요.
2. 1차 자료 추출 프로그램
AI를 자료의 ‘출처’가 아니라 자료를 가져오는 ‘도구 제작자’로 쓴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DART API에서 재무제표를 긁어오는 스크립트, KOSIS나 FRED에서 통계를 내려받는 크롤러를 AI에게 짜게 하는 거죠. 데이터 자체는 공식 소스에서 오고, AI는 코드만 씁니다. 그다음 교차 검증 프로그램은 여러 모델 API에 같은 자료를 던져 해석을 비교시키는 구조일 거예요. AI가 원안 창작보다 남의 글의 헛점 찾기에 강하다는 관찰과 맞물립니다. 상현님은 이미 프릳츠 DART 분석을 해봤으니, “DART에서 재무 데이터를 뽑아 정규화하고, 그 수치를 첨부해 해석시키는” 파이프라인 하나 만들어보면 대표님이 말한 경험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습니다.
3. 결과를 보는 눈
맞습니다, 그런데 한 겹 더 있어요. 검증하는 눈은 검증만 해서는 안 생깁니다. 좋은 문장을 판별하는 감각은 직접 오래 읽고 써본 사람에게만 생기고, 데이터의 이상함을 알아채는 감각은 데이터를 직접 만져본 사람에게만 생깁니다. 즉 “AI가 기본, 인간은 검증”의 세계에서 검증 능력은 역설적으로 AI 이전 방식의 훈련에서 나옵니다. 상현님이 걱정한 문해력 격차가 바로 여기서 복리로 벌어지는 거예요. 기준이 있는 사람에게 AI는 지렛대고, 기준이 없는 사람에게 AI는 대체재입니다. 전자는 격차를 벌리고 후자는 판별력을 영영 못 만들죠. 상현님의 10년 일기가 지금 AI 산출물을 판단하는 눈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1번의 “마지막 수정 주체” 기준과도 연결됩니다. 마지막 퇴고가 의미 있으려면 그걸 할 눈이 있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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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갈증.
운동을 해야겠다.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을 해야겠다. 연애를 해야겠다.
언어는 매우 저렴하다. 말은 굉장히 쉽게 내뱉을 수 있고 휘발성이 강하다. (그래서 가끔 세상에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가 나오는 걸수도)
하지만 행동은 에너지와 비용을 소비한다. ”내일부터 운동해야지“라고 외치는 인간과 진짜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는 인간은 다른 인간이듯이.
이 차이는 뭘까 생각해보면 ’갈증‘이 아닐까?
운동을 할 생각은 있지만, 공부를 할 마음은 있지만, 연애는 하고 싶지만
그걸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대가는 치르기 싫은 것.
아가리 파이터들을 (매우) 조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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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진보라는 이름값
‘좌파’를 ‘진보’라고 부르는 걸 볼 때마다 궁금했다. 진보(進步)는 글자 그대로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인데, 정작 그들이 미는 방향이 세상을 앞으로 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서다. 성장은 정체되고 규제는 늘어나는데, 어째서 그 이름만은 ‘전진’인가.
의문을 풀려면 이 단어가 원래 무엇을 재던 자였는지를 봐야 한다. 계몽주의가 말한 progress는 생산성이나 효율이 아니라 방향이었다. 세습된 신분·특권·구질서를 허물고 평등과 권리 확장 쪽으로 움직이느냐. 기준은 “얼마나 잘사느냐”가 아니라 “낡은 서열을 무너뜨리느냐”였다. 프랑스 혁명 의회에서 왕정 반대편에 앉았던 이들이 ‘좌파’가 되고, 구체제에 맞선 그 위치가 곧 ‘진보’로 불린 것이다.
여기에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다. 19세기의 원조 진보는 오히려 시장주의자였다. 자유무역과 개인의 권리, 경쟁을 내세워 길드·귀족 특권·중상주의에 맞선 자유주의자들이야말로 당대의 급진 세력이었다. 그런데 사회주의가 등장하며 ‘진보’의 정의가 재분배와 노동 쪽으로 옮겨갔고, 시장주의는 어느새 ‘보수’로 재분류됐다. 말하자면 시장주의자는 자기 자리를 빼앗긴 원조 진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본다. 경쟁은 차별을 비용으로 만든다. 편견 때문에 유능한 사람을 마다하는 기업은, 그러지 않는 기업에 밀려 도태된다(게리 베커가 1957년에 이미 논증한 대로다). 신분이 아니라 실력으로 값이 매겨지는 질서—낡은 위계를 허문다는 저 진보의 원뜻에 가장 충실한 건, 어쩌면 시장 쪽이 아닐까.
차별을 하지 말라는 인간들보다 오히려 시장주의자들이 더 차별을 배제한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매카시즘의 광풍이 미국에 몰아닥쳤을 때 좌파 영화인들을 구원한 것은 법이나 정부가 아닌 시장이라고 주장했다. 능력있고, 이 시점에 도움이 된는 ‘쓸모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든 고용하겠다는 시장의 무자비함이 역설적으로 정치의 폭력과 대중의 편견에서 사람들을 보호한 것처럼. 나 또한 이것이 진보이자 세상의 전진성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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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토끼와 거북이 현대판 해석을 좋아한다.
동화에서는 거북이가 이겼지만
현실에서는 빠른 토끼가 오히려 더 빨리 달리려고 노력하고
느린 거북이가 낮잠 잔다는 것이다.
근데 너무 맞는 말이라서 뭐라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미 좋고 좋은 자료와 정보는 널려있다.
이걸 읽을 수 있고, 해석할 수 있고, 내 삶에 적용하지 못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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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경제를 공부하는 법]
노력 없이 미래는 찾아지지 않는다
얼마 전 (젊은 회계사에게서) 경제학 공부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이메일을 받았다. 자본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회계사가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게 의외였지만 트위터에도 비슷한 질문은 꽤 올라온다. 그만큼 경제를 잘 모르니 답답한 일이 많고 실질적인 경제학 공부에 대한 갈증은 심하다는 말일 것이다.
경제를 잘 모르는 사람이 경제를 공부하고자 할 때 경제학 교과서를 사서 읽어보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경제학 교과서는 어려워서 이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어렵게 이해한 후에도 생활 속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해 지속적인 공부를 포기하게끔 만든다.
경제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경제학자처럼 사고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경제학원론을 듣고 미시와 거시 경제학을 공부했는데도 경제를 잘 모르겠다고 생각한다면 경제학적 사고방식에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학적 사고방식에 익숙하지 않으면 아무리 어려운 경제학 개념을 이해해도 경제 현상을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경제적 판단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경제학이 어려운 수학을 이용해서 모델을 구축하는 이유는 경제 현상은 모델보다도 훨씬 복잡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학이 경제학 자체는 아니며 반드시 수학을 통해서만 인간의 인센티브 체계를 이해하고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교과서는 아니지만 경제학적 사고란 무엇인지 알려주는 좋은 책들이 세상에는 많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이자 시카고 대학 교수인 게리 베커의 책을 가장 먼저 권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책은 한국에서 거의 번역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시카고 대학 교수이자 경제학자인 스티븐 레빗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스티븐 더브너가 쓴 《괴짜경제학(Freakonomics)》과 후속편인 《슈퍼 괴짜경제학(Superfreakonomics)》을 권한다.
레빗 교수는 거시적 현상을 이해하는 사고력 없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은 거시적 경제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하고 있는데 거의 100퍼센트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미시적 현상을 분석하는 논리에 익숙해졌다면 이제는 거시경제를 공부할 때다. 경제 혹은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거시경제 현상을 이해해 경제적 변화에 소외되지 않고 가능하다면 거시경제 변화를 예측해 돈을 벌고 싶어 한다. 적어도 손해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요즘 거시경제를 공부할 때의 문제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정보의 과잉일 것이다. 특히 국내 경제신문을 읽는 것이 경제 정보를 얻는 주된 방식이라면 많은 경우 부정확한 정보와 편향된 사고에 노출되게 된다. 현장을 사후에 보도할 수밖에 없는 신문 보도 방식의 한계와 이념의 지배를 받는 한국 언론의 경향 때문에, 그런 식으로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를 받아들이다 보면 현재 경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미래 경제를 예측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경제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투자활동을 통해 부를 늘리거나 사업을 위해 투자를 하고 고용을 하는 행위 역시 미래를 예측하는 일 없이 잘하기 어렵다. 예측할 수 없다면 적어도 운은 따라줘야 하는 것이다.
내가 읽은 모든 자료와 내게 필요한 모든 지표들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기초적인 정보들일 뿐이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모든 공부의 목표를 미래를 예측하는 데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 미래의 산업과 기업이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하나의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공부를 해보면 불필요한 정보와 꼭 필요한 정보를 나누는 것에서 많은 공부가 출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일을 하면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경제 공부를 하면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지 않기란 어렵다. 실은 전문가들의 세계에서도 그들 자신의 상대의 분석과 해석에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세상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있지만 그들 중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데 뛰어난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10을 틀리고 5를 맞추는 데도 뛰어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10을 틀리고 5를 맞추는 데도 뛰어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10을 다 맞추기라도 한 듯 거만한 사람도 많고, 10이 맞았는데 마치 10을 다 틀린 듯 겸손한 사람도 많다. 거만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의견을 과장하게 되고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분석에 지나치게 신중하기 마련이다. 그중에서 옥석을 가려보려면 가능한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비교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누구도 세상을 100퍼센트 예측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매크로 트레이딩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트레이더일 뿐이다. 나는 열세 개 정도 되는 상품을 트레이딩한다. 어쩔 수 없이 가격의 움직임에 많이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깊은 분석을 통해 긴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큰 포지션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많은 보고서를 읽고 언론기사를 통해 시장 심리를 추론하며 특히 대가들이 경제에 대해 쓰는 글들을 빠짐없이 읽는다.
경제와 금융은 시간이 지나면서 정오와 옥석이 가려지기 때문에 대가의 통찰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대가의 통찰을 가까이하려면 어쩔 수 없이 영어로 된 1차 자료를 가까이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경제 현상 속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퍼즐을 푸는 것과 같다. “미래의 단서는 어딘가 반드시 있다”고 나는 믿지만 그것은 노력 없이 찾아지지 않는다. 노력의 시작은 퍼즐의 단서들을 모으는 데서 출발하고 그것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서 시작한다. 기본적인 재무 정보 없이 어떤 기업을 분석하는 것이 불가능하듯 기본적인 데이터에 대한 관심 없이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예측은 아주 어려운 작업이지만 퍼즐을 끼워 맞추다 보면 꽤 근사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등장한다. 계속하는 쾌감이 커지는 순간이다. 컨센서스라고 불리는 시장의 전반적인 예상을 따라갈 수도, 혹은 컨센서스와 반대하는 시각을 갖게 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확신까지 도달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 들어가는 노력 없이 큰 포지션은 불가능하다. 가격의 스윙 때문이다. 예컨대 워런 버핏이 코카콜라를 매수한 것과 같은 큰 베팅은 엄청난 리서치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대가의 글 중에서 꼭 챙겨보아야 하는 것이 폴 크루그먼이나 마틴 펠드스타인 같은 대가의 글이다. 그들의 글은 가끔 서로 상반되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꼼꼼하게 챙겨볼 필요가 있다. 크루그먼은 진보적 성향을 가진 경제학자이고 펠드스타인은 보수적 성향을 가진 경제학자이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그들의 글이 주는 지적인 혜택이 크기 때문이다. 그들이 대가인 이유는 그들이 보여주는 통찰에도 있지만, 거짓말하는 법이 없다는 데에도 있다. 그들은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공통적으로 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면 그곳을 유념해야 한다. 지금 세계 경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훌륭한 통찰은 늘 포괄적인 도움을 준다.
내가 습관이자 취미이자 직업으로 하고 있는 것은 내가 분석하고 읽고 정리한 모든 것을 글로 남기는 것이다. 조지 소로스와 같은 전설적인 트레이더를 포함해 수많은 트레이더들이 수필 식으로 글을 써왔고, 워런 버핏을 비롯한 수많은 훌륭한 투자자들이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읽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노력 없이도 돈을 버는 트레이더·투자자가 될 수 있지만 그런 노력 없이는 큰 규모의 자금을 여러 가지 상품에 트레이딩해서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두 달에 멈추지 말고 최소한 5년은 한다는 목표로 꾸준히 읽고 쓰는 것이 필요하다.
경제학을 전공으로 공부해본 적이 없거나 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본인 스스로 자료를 정리하고 생각을 만들어내는 경험 없이 경제현장을 독자적으로 분석하고 미래를 예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경제신문을 비롯해 언론이 어떤 현상을 다룰 때면 이미 미래라고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언론이 유가 하락을 심층 취재할 때는 이미 유가는 하락할 만큼 하락한 다음이다. 그런 기사는 대중의 평균적인 관심사를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기 때문에 남다른 통찰을 원한다면 신문을 읽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과거 사례를 리서치하는 일을 해보아야 한다.
경기는 순환적이고 역사는 반복되지만 시장을 구성하는 사람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시장의 주제는 돌고 돈다. 지난 15년 동안 시장은 몇 가지 주제를 갖고 순환했다. 당면한 현안을 심층적으로 공부하면 서너 사이클이 지나면 지식과 연륜이 쌓이게 된다. 예를 들어 ‘슈퍼 스파이크’라며 원유 가격이 1백 달러까지 급등했을 때 석유산업과 원유가 물가와 통화정책에 미치는 함의를 충분히 공부했다면 최근 원유 가격이 급락할 때 그때 공부한 것을 시장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어렵다면 그때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것이다.
주변에 경제적 사안에 대해서 의견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쩌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몇 가지 개념에 익숙해질 수 있다면 경제 이슈에 대한 토론은 굉장히 즐거운 지적 작업이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지나면 누가 옳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아주 흥미진진한 일이다.
주위에 마땅한 사람이 없다면 그룹을 만들어서 자료를 준비하고 토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지금 시대는 정보가 없어서가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정보를 취합하고 요약하는 것이 어렵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양의 정보로 다양한 형태의 분석이 가능하다. 일단 많이 읽고 많이 써보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다.
정보의 인풋이 충분하지 않으면 결론은 나오지 않거나 나와도 기껏해야 운이 좋아서일 뿐이다. 눈이 적으면 눈사람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단 공부가 시작되면 꼬리를 물고 공부할 거리가 생긴다. 태어나면서부터 명석했던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외의 다른 방법은 알지 못한다. 나를 포함한 모든 공부하는 사람들의 건투를 빌어본다.
<나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김동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