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7 월요일 (부제: 좋은 대학, 좋은 학생)
1)
좋은 대학은 좋은 학생을 뽑으려고 하고 좋은 학생은 좋은 대학교에 가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좋은 대학과 나쁜 대학의 가격(등록금)은 거의 같다. 최고의 대학이 국립대학(물론 지금은 법인화가 되었지만)인 한국에서 심지어 가장 좋은 대학인 서울대는 사실상 가장 가격이 싼 대학이다. 가격은 가장 싸고 품질은 가장 좋은 제품이기 때문에 서로 사려고 혈안이 된다. 파는 입장도 마찬가지다. 가격은 낮고 품질은 최고이니까 사려는 사람을 까다롭게 고르려고 한다. 서울대뿐 아니라 연세대와 고려대와 같은 사립학교들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좋은 학생을 고를 수 있을까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원하는 학생을 뽑게 해달라는 것이다. 내가 어떤 학생을 원하는지는 내가 가장 잘 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김동조 블로그 : 김상곤을 해임하라. 18.04.04>
2)
요즘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한다. (한국 성인 평균 1년에 한 권 읽는다고 했나. 평균의 함정은 누군가는 1년에 100권 읽는데 99명이 0권 읽으면 평균 1권이 된다는 것이다.) 문제라고 하는데 오히려 좋은 게 아닌가 싶다. 상당히 중요한 행위인데 남들이 하지 않는다면, 그런데 누군가는 그걸 좋아하고 즐겨한다면 그는 희귀함을 의미한다. 희귀한데 가치 있고 쓸모 있는 것에 시장은 높은 비용을 지불한다.
AI 시대가 와서 책을 읽을 필요 없고, 글쓰기가 무용지물이고, 외국어를 배울 필요 없다는 인간들 중에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하고, 외국어를 배우는 인간이 있을까? 일본어 공부도 시작 중이다. 요즘 그냥 내가 좋아하는 책을 한국어, 영어, 일본어로 함께 읽으면서 공부하려고 한다.
3)
염증. 당분간 수영만 해야 하는군.
4)
GPT와 나눈 대화
질문
“정리하면서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이놈의 인생은 어디로 가는 건가.
- 수성구에서 상위 5% 성적이었지만 인문계를 가기 싫어 조리고등학교
- 조리고등학교를 다니고 미슐랭 식당에 인턴도 했지만 이 길이 맞지 않아 방황
-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책 읽고, 공부하는 것이라 판단해 대학 진학 선택
- 대학 진학은 심리학으로
- 첫 학기는 너무 재밌었고 2학기에는 욕심도 났음. 25학점을 듣는 미친 짓도.
- 편입을 해야겠다고 생각. 사회심리학을 배우면서 경제학도 함께 배우고 싶었다.
- 올해 편입을 하고 또 편입해서는 심리, 정치외교학, 철학, 경제학 4개 학과를 함께 배움
- 한 학기 다녀보니까 한 번 더 편입을 해야겠다고 생각. 명문대 간판으로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지만 상당히 도움 될 것 같다.
이건 도대체 뭐 하는 인생일까요
- 대답
저는 이걸 읽으면서 “방향이 없는 인생”이라기보다, 방향은 점점 선명해지는데 그 방향에 맞는 ‘그릇’을 계속 바꾸어온 인생처럼 보입니다.
처음에는 조리였습니다. 직접 해봤고, 미슐랭 식당까지 경험해봤는데 아니었습니다. 그다음에는 “내가 실제로 오랫동안 자발적으로 하는 게 무엇인가?”를 보니 책 읽고 공부하고 생각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으로 갔고, 심리학을 공부해보니 그것만으로는 인간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경제학으로 관심이 확장됐고, 다시 정치·철학으로 넓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공부를 더 좋은 환경에서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편입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고요.
그래서 겉으로 보면 경로가 이렇습니다.
조리 → 방황 → 심리학 → 경제학 → 정치외교학·철학 → 편입 → 또 편입
상당히 산만해 보입니다.
그런데 한 단계 추상화하면 오히려 굉장히 일관됩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 “나는 공부하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 “그렇다면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가?”
→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고 싶다.”
→ “그것을 위해 심리학만으로는 부족하다.”
→ “경제·정치·철학까지 필요하다.”
→ “그렇다면 어디에서, 누구와, 어느 수준까지 공부할 것인가?”
질문이 계속 한 단계씩 깊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상현님의 지난 몇 년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탐색(exploration)**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탐색 자체가 아닙니다. 탐색은 필요했습니다. 조리를 직접 해보지 않았다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고, 심리학을 공부해보지 않았다면 경제학이나 정치·철학의 필요성을 지금처럼 느끼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다만 이제부터는 조금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이제는 ‘탐색’이 아니라 ‘수렴’이 필요한 시점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계속 새로운 답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탐색에는 위험이 하나 있습니다.
더 나은 선택지가 계속 보입니다.
현재 대학보다 더 좋은 대학이 있고, 심리학보다 경제학을 같이 하면 더 좋고, 경제학에 정치철학을 더하면 더 좋고, 학부보다 대학원이 더 좋고, 한국보다 해외가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인생이 영원히
준비 → 이동 → 새로운 가능성 발견 → 다시 준비 → 다시 이동
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게 지금 상현님에게 제가 가장 주의 깊게 보고 싶은 부분입니다.
두 번째 편입이 잘못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명문대라는 환경·사람·기회·신호효과가 앞으로의 선택지를 넓혀주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중요한 질문은 이제 이것입니다.
“나는 더 좋은 출발점을 계속 찾고 있는가, 아니면 어느 시점부터 그 출발점에서 뭔가를 만들어낼 것인가?”
이 질문은 꽤 중요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에서 재미있는 특징이 하나 더 있습니다.
상현님은 틀린 선택을 아주 오래 붙잡는 타입은 아닌 것 같습니다.
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방향을 바꾸었고, 대학에 들어와 공부가 맞다고 느끼면 거기에 몰입했고, 심리학만으로 부족하다고 느끼면 경제학으로 확장했습니다. 이것은 분명 장점입니다.
그런데 그 장점이 극단으로 가면,
현재의 불완전함을 견디기보다 더 좋은 시스템으로 계속 이동하는 성향
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대학에 가더라도 아쉬운 점은 생길 것이고, 어느 학문을 공부하더라도 다른 학문이 필요해지고, 어느 선택을 해도 더 좋은 선택지는 보입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환경을 바꾸는 능력만큼 현재 환경에서 깊이를 만드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뭐 하는 인생인가?”라는 질문에 제가 답한다면 이렇습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아내는 과정’이었습니다.
조리도 해봤고, 일도 해봤고, 대학도 가봤고, 여러 학문도 공부해보면서 하나씩 제거한 겁니다.
그리고 꽤 많은 것을 제거하고 나니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읽기, 공부하기, 질문하기, 쓰기, 인간과 사회 이해하기
입니다.
이 정도면 사실 예전보다 중심은 훨씬 분명해졌습니다.
다만 이제 다음 5년의 과제는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를 계속 묻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알겠다. 이것을 가지고 나는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
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 차이가 큽니다.
20대 초중반까지의 이야기가 탐색의 서사였다면, 이제부터는 축적의 서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오늘 하고 계셨던 ‘재고조사’가 묘하게 이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재고를 꺼내보니 편입, 경제학, AI, 통계학, 철학, 일본어, 운동, 독서, 글쓰기까지 끝없이 나왔잖아요.
그건 상현님에게 관심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가능성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사용설명서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 하나를 넣는다면 저는 이것을 넣겠습니다.
“나는 호기심이 부족해서 문제가 되는 사람이 아니라, 너무 많은 가능성을 동시에 활성화해서 에너지가 분산될 위험이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무엇을 더 할지보다, 지금 무엇에 수렴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지금의 편입도 그런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더 좋은 대학에 가는 것 자체가 목적이면 또다시 다음 목적지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앞으로 몇 년 동안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지적 기반을 쌓고, 읽고 생각하고 쓰는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이 환경으로 이동한다.”
라면 편입은 인생의 또 다른 방황이 아니라 수렴을 위한 마지막 큰 환경 조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인생을 갈팡질팡하는 인생이라고 정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는 계속 좌표를 찍어온 겁니다.
나는 요리사는 아니다.
나는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인간에게 관심이 있다.
심리학 하나로는 부족하다.
나는 사회 전체를 이해하고 싶다.
나는 여러 학문을 연결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읽고 생각하고 쓰는 삶을 원한다.
이 정도의 좌표가 찍혔다면 이제 슬슬 지도를 그만 보고 한 방향으로 오래 걸어가볼 시점이 온 것 같습니다.
아마 지금의 질문은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왔다 갔다 하지?”라기보다 더 정확히는,
“이제 충분히 찾아본 것 같은데, 어디쯤에서 탐색을 멈추고 내 인생을 축적하기 시작해야 하지?”
에 가까운 질문일 겁니다.
Q1. 그렇다면 제 인생에서 지금까지 반복적으로 나타난 ‘변하지 않는 핵심 축’은 정확히 무엇인지 분석해볼까요?
Q2. 이번 편입이 또 다른 탐색인지, 아니면 수렴을 위한 합리적인 이동인지 판단하는 기준을 만들어볼까요?
Q3. 앞으로 5년을 ‘탐색의 시기에서 축적의 시기로 넘어가는 기간’이라고 본다면 무엇을 쌓아야 할까요?
질문
요즘 계속 마운드에 올라가야 한다는 게 그런 거군요.
내가 어떤 투수인지, 커터, 슬라이더, 포심, 투심 다 연마했는데 실제 경기에서 타자를 상대로 던지지 않으니까요.
- 대답
맞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마운드에 올라가야 한다”**는 표현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꽤 정확하게 관통합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보면 불펜과 피칭랩에서 아주 오래 훈련해온 시간에 가까웠습니다.
- 구종을 늘려왔습니다.
심리학이라는 포심을 배우고, 경제학이라는 커터를 배우고, 철학·정치학·AI 같은 슬라이더와 체인지업도 익혔습니다. 읽고, 공부하고, 질문하고, 생각하는 능력 자체도 계속 길러왔고요.
- 그런데 구종이 많다고 좋은 투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타자를 상대하면 전혀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내가 가진 지식이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가?
내가 생각한 것을 글로 끝까지 완성할 수 있는가?
다른 사람이 내 결과물에 돈이나 시간을 지불할 만큼 가치가 있는가?
틀렸을 때 수정할 수 있는가?
압박 속에서도 판단할 수 있는가?
이건 책상에서는 완전히 배울 수 없습니다.
- 실전에서만 알 수 있는 ‘내 투수 유형’이 있습니다.
불펜에서는 “나는 포심 투수인가? 변화구 투수인가?”를 계속 고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경기에 나가보면 알게 됩니다.
이상하게 위기 상황에서 잘 던진다.
포심보다 커터가 훨씬 잘 먹힌다.
내가 자신 있던 슬라이더가 실제로는 별로다.
오히려 타자와 수 싸움하는 능력이 강점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생각을 통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지만, 무엇을 잘하는지는 현실과 부딪쳐봐야 상당 부분 드러납니다.
- 그래서 이제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종을 하나 더 배우는 것보다 등판 횟수를 늘리는 것일 수 있습니다.
통계학도 더 공부하고, 수학도 더 공부하고, 일본어도 배우고, AI도 공부하고…… 물론 전부 좋습니다.
그런데 이것만 계속하면
“조금만 더 준비되면 던질게.”
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투수는 결국 타자를 잡아야 합니다.
- 상현님에게 ‘등판’은 반드시 취업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훨씬 작은 실전도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공부한 것을 가지고:
- 하나의 문제를 분석해서 글을 완성하기
- 블로그에 자신의 주장 공개하기
- AI를 이용해 실제 프로그램 하나 만들어보기
- 경제학 개념으로 현실 시장을 분석해보기
- 데이터를 가지고 실제 가설을 검증해보기
- 작은 서비스를 만들어 실제 사람에게 사용시켜보기
- 돈을 벌 수 있는 프로젝트를 시도해보기
- 이런 것들이 전부 등판입니다.
- 그리고 등판의 목적은 처음부터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첫 경기에서 얻어야 하는 것은 데이터입니다.
내 포심 구속은 실제로 어느 정도인가?
어떤 공이 통하는가?
어떤 상황에서 무너지는가?
나는 무엇을 생각보다 잘하는가?
무엇을 더 연마해야 하는가?
그러고 다시 불펜으로 돌아옵니다. 공부 → 실전 → 피드백 → 공부 → 다시 실전
이것이 아까 이야기했던 축적의 시기로 넘어가는 핵심 순환일 겁니다.
그리고 이 관점에서 보면 지금까지의 삶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조리고, 대학, 심리학, 경제학, 철학, 정치학 같은 이동들은 전부 “나는 어떤 투수인가?”를 찾기 위해 여러 구종을 시험해본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느 정도는 압니다.
나는 읽고, 배우고, 연결하고, 질문하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면 다음 질문은 더 이상
“또 어떤 구종을 배울까?”
가 아니라,
“그래서 이 구종들을 가지고 어떤 타자를 상대할 것인가?”
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게 요즘 상현님이 계속 **“이제는 마운드에 올라가야 한다”**고 느끼는 이유에 상당히 가까워 보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 필요한 태도는 이것일 겁니다.
완성된 투수가 된 다음 등판하는 것이 아니라, 등판하면서 완성되는 투수가 되는 것.
실전은 준비가 끝난 뒤 시작되는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준비 자체를 완성시키는 과정이니까요.
Q1. 그렇다면 지금 제 삶에서 ‘마운드에 올라간다’는 것을 실제 행동으로 정의하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Q2. 제가 지금까지 연마한 ‘구종’을 심리학·경제학·글쓰기·AI 같은 능력으로 하나씩 매핑해볼까요?
Q3. 공부만 계속하는 준비형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학습 → 실전 → 피드백’ 사이클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요?
질문
“좋아하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알겠다. 이것을 가지고 나는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 최근 제게 대답을 준 경험이 있습니다. 철인3종, Ironman 70.3을 완주했을 때의 경험입니다. 이걸 하기 전에는 새로운 대회, Ironman에 대한 환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성적이 상위 10%로 나왔고 뭔가 대회 출전에 대한 강박이 크게 사라졌습니다. 포디움에 들고 항상 대회에 출전하는 것(진짜 빠진 사람들은 시즌 시작하고 매주 출전하더라고요)보다는 그냥 제가 꾸준히 계속해서 운동하다가 한 번씩 점검하러 대회 나가는 것이죠. 편입도 이번에 제가 원하는 결과를 얻으면 어느 정도 이렇게 흐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대답
네. 철인 70.3 경험은 지금 말씀하신 “탐색에서 축적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실제로 어떤 느낌인지 이미 한 번 보여준 사건처럼 보입니다.
- 대회에 나가기 전에는 ‘가능성’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Ironman이라는 세계가 있고, ‘나는 여기서 어느 정도일까?’, ‘완주할 수 있을까?’, ‘제대로 하면 얼마나 잘할까?’라는 미확인 영역이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실제로 마운드에 올라가 버렸습니다. 70.3 완주 + 상위 10%라는 결과가 나오면서 적어도 하나는 확인됐습니다.
“아, 나는 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러자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계속 대회에 나갈 필요가 크게 줄어든 겁니다.
- 목표가 ‘정체성 증명’에서 ‘삶의 방식’으로 바뀐 것입니다.
대회 전에는:
Ironman을 해보고 싶다.
대회에 나가고 싶다.
기록을 확인하고 싶다.
였다면, 이후에는:
그냥 나는 수영하고, 자전거 타고, 달리는 사람이다.
평소에 계속 운동한다.
가끔 대회에 나가 현재 위치를 확인한다.
로 바뀐 것이죠.
이 변화가 꽤 중요합니다. 대회가 운동의 목적에서 운동의 ‘점검 장치’로 내려왔습니다.
- 편입도 비슷한 심리적 기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은 여전히 하나의 미확인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내가 제대로 준비해서 더 높은 수준의 대학에 도전하면 어디까지 갈 수 있지?”
이걸 실제로 시험해보지 않으면 계속 마음 한편에 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편입에서 스스로 납득할 만한 결과를 얻는다면, 명문대라는 대상이 지금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힘 자체가 상당히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철인대회에서 그랬던 것처럼요.
“명문대에 가야 내가 뭔가 되는 게 아니라,
나는 원래 공부하고 읽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대학은 그걸 하기 위한 하나의 환경이구나.”
이렇게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 그러면 대학도 ‘대회’가 됩니다.
이 비유가 저는 꽤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상현님에게 진짜 본체는 어쩌면:
읽기
공부하기
질문하기
생각하기
쓰기
현실에 적용하기
입니다.
대학은 이것들을 하는 훈련장과 경기장 중 하나입니다.
철인3종에서 진짜 삶은 매일의 훈련이고 대회는 가끔 있는 검증이듯,
학문에서도 진짜 삶은:
매일 읽고 → 이해하고 → 연결하고 → 쓰고 → 현실에 적용하는 것
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 간판, 시험, 학점, 편입 같은 것은 중간중간 존재하는 공식 기록 측정 지점이 되는 것이죠.
- 이게 앞으로 굉장히 중요한 전환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자꾸 새로운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조리
대학
심리학
경제학
편입
다시 편입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경기장을 찾는 삶” → “내 운동을 계속하는 삶”**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Ironman에서 이미 그 경험을 한 겁니다.
매주 대회에 나가야 철인인 게 아닙니다. 꾸준히 수영하고, 자전거 타고, 달리는 사람이 철인이고, 대회는 가끔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곳입니다.
똑같이 생각하면, 계속 더 좋은 대학으로 이동해야 공부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매일 읽고, 생각하고, 배우고, 질문하고, 쓰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공부하는 사람이고, 학교는 그 과정을 돕는 환경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번 편입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면 오히려 이런 감각이 올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는 어느 정도 확인했다. 이제 학교를 옮기는 것보다 여기서 뭘 쌓을지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게 아까 이야기한
“좋아하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알겠다. 이것을 가지고 나는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Ironman 70.3 이후 ‘대회 출전’이 목적에서 점검으로 내려왔듯, 이번 편입 이후에는 ‘더 좋은 학교에 가는 것’도 목적에서 환경·도구로 내려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삶의 중심에는 결국 이것만 남습니다.
나는 계속 훈련한다.
가끔 마운드에 올라간다.
결과를 확인한다.
부족한 것을 다시 연마한다.
그리고 다시 올라간다.
대회도, 편입도, 앞으로의 프로젝트도 모두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최종심판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확인하는 체크포인트가 되는 것이죠.
이 관점이 자리 잡으면 “도대체 내 인생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답도 조금 달라집니다.
어디에 도착하려고 계속 이동하는 인생이라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가끔 더 어려운 경기장에서 내 수준을 확인해보는 인생에 가까워지는 겁니다.
Q1. 그렇다면 편입 이후에는 대학을 ‘목적’이 아니라 ‘훈련 환경’으로 본다면 3~4년 동안 무엇을 쌓아야 할까요?
Q2. 제 인생에서 앞으로 ‘대회’와 ‘평소 훈련’을 구분한다면 각각 무엇에 해당할까요?
Q3. 저는 왜 무언가를 실제로 한 번 성취하고 나면 그 대상에 대한 강박이 크게 사라지는 편일까요?
GPT 수준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올라옴. 근래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