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3 일요일 (부제: 자취생활)
1)
얼마 전 친한 친구가 춘천에 왔다. 내 집에 들어온 두 번째 사람이기도 하고(첫 번째는 UDT 출신 대학교 동기), 이 친구가 나한테 한 말이 기억나서 잠시 기록해본다.
“내가 봤을 때 너는 오히려 집을 너무 잘 갖추어 놓아서 문제야. 어, 사람이 좀 필요한 게 있어야 밖에 나가서 카페도 가고, 위스키도 마시러 가지. 집에서 이게 해결이 다 되니 집에만 있는 거 아니야.”
요즘 운동하는 시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있다. 집이 내게는 도서관이자, 카페이자, 요가원이자, 바이다.
학교를 타지역에서 다니는 바람에 고등학교 때부터 본가에서 나와서 살았다. 혼자 살다 다시 본가에 들어갔다가, 최근 다시 자취를 한 지 6개월 정도 되었다. 개인적인 만족감으로는 최상급이다. ‘내가 원하는 걸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그 자유. 오늘 주말을 맞아 청소도 할 겸 싱글벙글 자취생활 기록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한다. 먼저 폼 롤러로 전신을 다 열고, 다음 스포츠 밴드로 상체 쪽을 스트레칭한다. 수영을 하다 보면 어깨에 부하가 종종 걸렸는데 확실히 스트레칭 후에는 걸린다는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 딥 플로우의 <작두>를 들으면서 스트레칭하면 약간 ‘세상을 씹어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허황된 느낌에 압도된다.
집 근처에 50m 레인 10개가 깔린 수영장이 있다. 20대 초반에 곡성에 거주할 때도 느낀 건데 생산성의 핵심이자 시작은 직주근접이라고 본다. 나로 치면 내게 필요한 시설들이 아닐까. 국제 대회용 수영장은 자전거로 5분 내로, 크로스핏장은 진짜 걸어서 20초 거리에 있다. 게다가 북한강을 두르는 자전거 도로도 집 앞에 있다. 철인3종 훈련하기에 이보다 최적의 장소가 있을까 싶은 정도.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나면 커피 한 잔을 내린다. 아침에는 주로 커피만 마시고 점심 이후에 한 잔 더 할 때는 아이스 라떼를 마신다. 특히 우유를 사용한 커피 음료를 좋아하는데 요즘 계속 맛있는 우유 제품을 찾고 있다. 우유가 재밌는 게 멸균 온도에 따라 맛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소비하는 서울우유 같은 제품은 고온에서 급속 살균을 한다. 저온 살균(조금 더 길게 하는데 해봤자 몇십 초 차이이긴 하다) 제품이 따로 있는데 확실히 풍미가 다르다. 라떼의 핵심은 맛있는 커피에 맛있는 우유다. 어느 하나라도 엇나가면 맛있는 라떼가 되기 어렵다.
브루잉 커피를 마실 때는 주로 따뜻하게 마신다. 아이스로 하면 향을 느끼는 데 어쩔 수 없이 한계가 있다. 하지만 날씨가 무더운 8월에는 아이스도 자주 마셨다. 브루잉 제품들은 알리와 네이버에서 커피에 빠삭한 지인분 조언으로 구비했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집 주변에 카페가 없으니. 답답하면 답답한 놈이 우물 파야 한다.
학기 초에는 도서관에 자주 갔는데 얼마 뒤에는 가지 않게 되었다. 책을 깨끗하게 보지 못한다. 도서관에서 보고 마음에 들면 책을 구매하는 분도 있다는데 나는 그게 안 된다. 내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읽을 책은 많은데 이걸 언제 또 두 번 읽는가. 처음 읽을 때부터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볼펜으로 메모하며 읽는다. 좋아하는 문장은 타이핑해서 메모해둔다. 지인이 언제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남자들이란 존재는 무언가를 수집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병이 있나 보군요.” 그게 내게는 책 아닐까. 하지만 신간이 아니면 새 책으로 구매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책을 깨끗하게 보지 않기에 상관이 없다. 책을 다 읽는 속도보다 책을 구매하는 속도가 빠르다.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욕망의 덩어리라서.
혼자 거주하다 보니 1) 엄청 비싸지는 않은데 2) 거의 매일 사용하고 3) 일정 금액만 투자하면 4) 쓸 때마다 기분 좋은 물품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발견한 건 식기류와 샤워용품인데 식기류 중에서는 [잔], 샤워용품 중에서는 [수건]이다.
잔 같은 경우는 친구 집에서 처음 써보고 일본 갔을 때 면세로 구매해왔다. 쇼토쿠의 우스하리라는 잔이다. 이 잔에 커피를, 위스키를, 와인을 그리고 하이볼을 마시기도 한다. 쉽게 설명해서 편의점에 4캔 만 원, 2,500원짜리 맥주를 우스하리 잔에 마시면 만 원짜리 맥주 같은 느낌이 난다. 잔의 두께가 나와 맥주의 거리를 나타낸다는 문장을 본 것 같은데 한 번 써보면 고깃집 맥주잔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 수 있다. 일본에서 잔 4개를 면세로 10만 원에 구매해왔다. 집들이 선물로도 너무 좋을 듯.
그리고 수건. 네이버 쇼핑에 [호텔수건]이라 치면 나오는데 수건 가격에 따라 방이 나뉜다. 20방 100g, 40방 200g 식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방이 높고 무게가 무거울수록 비싸고 질감이 좋다. 한 장에 4,000원 정도 하는데 수건 쓸 때마다 포근한 느낌이 든다. 다만 좋은 만큼 관리를 잘해줘야 한다. 쓰고 꿉꿉해지지 않게 바로바로 널어두고 세탁도 수건끼리만 울 세탁으로 해야 한다. 건조는 무조건 자연건조.
2)
편입을 생각하고 1주일 정도 시간이 흘렀다. 여러 가지 것들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여러 가지 공부 방식들을 시도하기도 했고 경제적인 고민도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몇 가지 측면을 나누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 편입
일단 편입영어 같은 경우는 계속해서 방식을 찾아가고 있는 중. 방식을 찾아간다고 하면 처음 하는 것이다 보니 무엇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들의 방식을 따르면 되지만 나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 보니 내가 스스로 내게 맞는 공부법을 찾아야 하고, 그것을 스스로 크게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 편입인데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전과는 다른 게 있기는 한 것 같다. 지난 첫 번째 편입에서 내가 잘한 부분, 못한 부분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도도 상당히 달라졌으니. 이해도라고 하면 예를 들어 공부 방법에서는 내가 어떤 방식으로 지식을 인식하는지부터, 컨디션 관리에서는 내가 위아래로 크게 흔들렸던 부분들은 무엇인지도 아는 것 말이다.
첫 번째는 부모님과 함께 거주했지만 이제는 춘천에 혼자 거주하고 있고 특히 이곳에서는 모든 것의 세팅을 내게 맞춰서 할 수 있다는 것. 달리기도, 수영도 처음부터 스프린트 속도를 내지 않고 웜업을 하고 속도를 끌어올리듯 지금 웜업 단계가 아닐까. 하지만 중요한 건 스트레칭하고 웜업을 하는 것이 스트레칭과 웜업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 실제 플레이를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
- 사람
요즘 거의 집에 박혀 있다. [기상-운동-집-운동-집]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과 교류할 시간이 거의 없다. 말을 하지 않는 날도 많다. SNS에 깊게 빠질 때를 보면 결국 홀로 있을 때이다. 사람과 함께 있고, 그 사람과 대화를 하고 활동을 하면 SNS를 열어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굳이 할 필요가 없으니.
최근에 알게 된 분이 계신다. 지난 7월 철학 스테이에서 알게 된 분. 그때는 막 엄청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같은 테이블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은 정도. 인스타그램을 서로 팔로우하게 되었고 뭐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그러다 최근 재즈 모임에 같이 가자고 연락이 와서 함께 갔다. 나는 쓸데없는 것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만나고 싶지도,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뭔가를 같이 하자고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재즈 모임에 함께 갔는데 참 좋았다. 결국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도 말이다. 고독을 찬양할 필요 없고 인간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 고독 안에서 성장해서 다시 관계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말이다.
대학원 다니신다고 하셔서 서울에서 다니시구나 했는데 서울대 박사생이었다. (곧 졸업)
3)컨디션
요즘 컨디션이 들쭉날쭉한데 경제적 상황에 대해서 한 번 매듭을 지을 수 있어서 그런지 조금씩 안정되어 가는 중. 어제 강철의 연금술사를 봤는데 그런 대사가 나왔다. “이제 이런저런 고민은 그만둘 거야. 앞만 보고 달릴 거야. 막다른 길이 나오면 그때 가서 고민하면 돼. 언젠가 반드시 너를 원래대로 돌려줄게.”
손교수님이 말해주신 그 대목 아닐까. 신체와 정신이 무섭게 집중하는 그 지점. 평일에는 술을 안 마시다가 주말에 하이볼 한 잔 하니까 너무 좋았다. 매일 마시는 것보다 오히려 재밌는 듯. 평일에는 열심히 달리다가 또 주말에는 하루 정도 내려오고. 그렇게 정반합과 중용을 맞추어가는 그런 것. 조금씩 이제 가속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
4)
얼마 전에 다저스에 합류한 타릭 스쿠발. 야마모토도 그렇고, 스쿠발도 그렇고 에이스의 특징이자 에이스의 필수조건은 실점 억제도 중요하지만 저점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저점이라고 하면 이 투수가 초반에 안타를 허용하더라도 얼마만큼 믿고 맡길 수 있는지다. 야마모토도 1회에 실점률이 상당히 높은데 1, 2회만 지나가면 투구 머신이 된다.
스쿠발도 재밌는 게 야마모토와 동일하게 처음부터 슈퍼루키가 아니었다. 고교 시절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대학 시절 애리조나에게 29라운드에 지명되었지만 다시 대학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후에 디트로이트에서 ‘9라운드 전체 255순위’로 지명받는다. 재능은 있는 것 같은데 도박에 가까운 픽인 것이다.
이후 프로 입단 후에 구속-탈삼진 능력은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제구와 완성도가 말도 안 되게 좋아진다. 18년 드래프트 당시 9라운드 전체 255순위로 지명받은 선수가 24년, 25년 사이영상 2연패를 달성한다. 야마모토-스쿠발 원투펀치로 보여주는 다저스의 가을 야구는 어떨까.
오늘 1회 3실점 했지만 7이닝 3실점 11K로 다저스에서 첫 승을 거둔 스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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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이의 성적에 상관관계가 있는 요소들이다. 부모의 교육 수준이 높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다. 엄마가 첫아이를 출산한 나이가 30세 이상이었다. 아이의 출생 당시 몸무게가 적었다(저체중아였다). 아이의 부모가 집에서 영어를 쓴다. 입양된 아이다. 부모가 PTA 활동을 한다. 집에 책이 많다.
다음은 상관관계가 없는 요소들이다. 가족 구성이 온전하다. 최근에 주변 환경이 더 좋은 곳으로 이사했다. 아이가 태어나서 유치원에 다니기까지 엄마가 직장에 다니지 않았다. 아이가 헤드 스타트에 다녔다. 부모가 아이를 박물관에 자주 데리고 간다. 아이를 정기적으로 체벌한다. 아이가 TV를 많이 본다. 부모가 거의 매일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약간 지나치게 일반화하면, 첫 번째 목록은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를 묘사한다. 반면에 두 번째 목록은 부모가 ‘아이에게 해주는 일’을 묘사한다. 교육 수준이 높고 성공적이며 건강한 부모의 아이가 학교 성적이 높은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이를 박물관에 데려가든, 체벌을 가하든, 헤드 스타트에 보내든, 자주 책을 읽어주든, TV에 빠져 있게 하든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자녀 양육 기술에 사로잡혀 있는 부모에게는(그리고 자녀 양육 전문가에게는) 이것이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소식일 수 있다. 현실적으로 자녀 양육 기술이 지나치게 높이 평가되고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부모가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런데 여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녀 양육 책을 집어 드는 그 시기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라는 점이다. 사실 중요한 것 대부분은 이미 오래전에 결정되어버리는 것이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며, 누구와 결혼을 했으며, 어떤 삶을 이끌어나가고 있는가 하는 것 말이다. 만일 당신이 머리가 좋고, 근면하고, 교육 수준이 높고, 봉급도 많고, 당신만큼이나 운이 좋은 사람과 결혼했다면, 당신의 아이들도 성공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그렇다고 정직, 사려 깊음, 사랑, 세상에 대한 호기심 등의 가치를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신이 부모로서 ‘무엇을 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다시 강조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위압적인 부모는, 선거에서 승리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돈이라고 믿는 후보와 아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세상의 모든 돈을 다 가졌어도 유권자들이 원래부터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후보는 당선될 수 없는데도 말이다.
<괴짜 경제학 - 스티븐 레빗(시카고대 경제학 교수), 스티븐 더브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