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신사 in Tokyo,Japan(2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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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을 맞아 “일본 식민지 지배를 아직도 청산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를 읽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당시 대학생 형이 갖고 있던 한국의 분단사를 다룬 책들을 읽었던 고등학생 때다.

조선은 근대적인 국가로 가지 못하고 망해버렸다. 근대화가 진행된 일본 식민지 시대에 대한 평가는 다소 모순적이고 복잡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권과 여권 그리고 경제 후생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 식민지 시대가 조선시대에 비해 비약적으로 나아졌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유진 초이(이병헌)와 구동매(유연석)는 노비와 천민 출신이다. 만약 조선왕조가 망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인생은 파리나 바퀴벌레보다 나을 게 없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도 유진 초이와 구동매의 부모는 파리나 바퀴벌레처럼 비참하게 죽는다. 우리가 유의미한 경제성장을 하기 시작한 게 바로 일본 식민지 시대다. 이전 수백 년 동안 조선의 연평균 성장률은 의미 있게 플러스됐던 적이 없다. 늘 제자리였단 얘기다.

우리가 식민지의 아픔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일본보다 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나라가 되는 것이다. 삼일절에 일본 여행 가는 걸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는 인터넷 매체의 기사를 읽었는데 나로서는 그런 인간이 실제로 있다는 걸 믿기 어렵다. 혹시 주변에 그런 인간이 있다면,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머리도 나쁘고 인성도 안 좋은 건데 가까이해서 좋을 게 없다.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라면 후손들이 잘살게 되어 일본 백화점에서 쇼핑도 하고, 일본 요리사들이 해주는 요리를 맛있게 먹고, 일본인들에게 마사지 받으며 피로를 푸는 모습을 볼 때 진심으로 흐뭇해할 것이다. 최선을 다해 그분들을 기리고 예우하는 것이 우리 몫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마음속에 바람이 생기자 운명의 바람이 불었다-김동조>

야스쿠니 신사에 다녀왔다. 한국인이라면 뉴스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전범, 신사참배, 과거사 청산.여행을 계획할 때는 갈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한일의 미래를 오래 생각하다 보니, 그 '과거'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두 발로 밟아보고 싶어졌다. 나는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고, 두 발로 디딘 것을 믿는 인간이다. 생각이 막힐 때, 그냥 가서 겪어보는 것이 이따금 답을 준다.

그리고 하나를 더 정해두고 갔다. "일본놈들, 죽일 놈들, 야스쿠니는 쓰레기 같은 공간"이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고 아무것도 대비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나는 도덕이 아니라 구조를 보러 갔다. 규탄하러 간 것이 아니라, 이해하러 갔다.

야스쿠니는 도쿄 황궁 바로 옆에 있다. 며칠 전 아침 달리기를 하다 이미 한 번 지나쳤던 곳이다.이곳의 최초 목적은 지금과 달랐다. 전범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메이지 정권에 목숨을 바친 이들만을 위한 선별된 추모 공간이었다. 전철에서 내려 10분쯤 걸으니 신사가 보였다.입구부터 정치적 행위를 금지한다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반대편에서 자기 몸집만 한 가방을 멘 아이들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노년의 선생이 함께였다. 저 선생은 이 아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었을까. 이 아이들은 여기에 왜 왔을까.

신사 그 자체에서는 큰 감정이 들지 않았다. 특별히 시선을 붙드는 시설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거대하고, 정갈하고, 텅 빈 공간이었다. '아, 여기가 야스쿠니구나.' 딱 그 정도였다. 신사 옆에 박물관이 하나 있다. 유슈칸(遊就館). 일본이 페리 제독에 의해 개항당한 이래로 벌인 수많은 전쟁의 기록을 모아둔 곳이다.

어떤 전시품이 있는지 나는 대충 알고 있었다. 태국과 미얀마를 가로지르는 죽음의 철도, 카미카제에 동원된 항공기.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것들이 주는 감각에까지 압도당하리라고는, 미처 몰랐다.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안내문은 내부 사진을 따로 판매하기 때문이라고 적어두었다. 하지만 정말 당당한 역사라면, 왜 당당하게 보여주지 못하는가.

초반의 전시는 사무라이와 개항 초기의 일본이었다. 그런데 전시장을 하나씩 옮겨갈수록, 자료는 점점 더 거대해지고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해갔다.자극적이라는 것은 잔인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전쟁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카미카제 대원들의 증명사진, 전장에서 쓰인 수통, 총 맞은 자국이 남은 철모, 항공모함 모형.그런데 바로 그 평범함이 나를 짓눌렀다. 참상이 아니라 유능함이. 잔혹함이 아니라 정교함이.

압도당했다.

그것은 "일본은 나쁜 놈들"이라는 감정이 아니었다. 두려움과 무력감이었다. 1854년에 서양 군함에 억지로 개항당한 나라, 군함 한 척 제 손으로 만들지 못하던 나라가, 1922년에 호쇼(鳳翔)로 세계 최초로 실전에 항공모함을 띄웠다.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그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돌아와 찾아보고서야, 그 압도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우연히 압도당한 것이 아니었다. 이 공간은 나를 압도하도록 설계되었고, 나는 설계된 대로 압도당한 것이다.

유슈칸遊就館이라는 이름부터가 그렇다. 순자에게서 온 이 이름은 전몰자를 '본받을 벗'으로 규정하는 하나의 논변이다. 관람객은 죽은 자를 애도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벗으로 삼아 본받으러 오도록 배치된다. A급 전범의 합사조차 패전의 불가피한 반사작용이 아니었다. 그것은 1978년의 정치적 선택이었다. 야스쿠니가 전범을 기리는 공간이 된 것은 전후 어느 밤에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70년대에 누군가 그렇게 만들기로 결정한 결과였다.

이 사실들을 알아차리는 순간, 무너졌던 분석이 정동 위로 다시 올라섰다. 압도는 여전히 압도였지만, 이제 나는 그 압도의 설계도를 손에 쥐고 있었다.

박물관은 정확하게 적어두었다. 대동아전쟁大東亜戦争 Greater East Asia war, 즉 일본은 아시아의 자유를 위해 서구 열강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고. 그리고 그 독립적 정신을 본받아 인도부터 태국, 중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나라가 독립운동을 시작했다고. 자랑스럽게.

한국은 오직 관리된 영토로만 등장할 뿐, 일본이 가해한 대상으로도, 독립운동의 주체로도 단 한 번 호명되지 않았다.이는 실수가 아니다. 이 기계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정확히 알려주는 데이터다. 아시아 해방의 서사에 식민지 조선은 끼워 넣을 수 없다. 그래서 지워졌다. 무엇이 지워졌는가를 보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가 보인다.

두려움과 무력감은 두 층위였다.

첫째, 저들은 가능했는데 조선은 왜 불가능했는가. 그 패착이 어떻게 그토록 많은 생명을 짓밟았는가.

둘째, 누군가 이런 짓을 한 번 해냈다는 것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자 입구에서 스쳐 지난 아이들이 떠올랐다. 몸집만 한 가방을 메고 걸어 나오던 그 아이들. 저 아이들은 여기서 무엇을 물려받는가. 그리고 우리와 우리의 다음 세대는, 무엇을 물려받는가.박물관이 자랑스럽게 걸어둔 총포와 잠수함과 기관총. 이것들로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그것을 쏜 이들은, 당시 나 보다 어린 청년들이었다. 나이 많고 어리석은 자들이 전쟁을 벌였지만, 최전선에서 죽이고 죽는 것은 늘 어리고 가능성 있는 이들이다.

그 방에서 본 공포는 잔혹함이 아니었다. 인간을 그렇게까지 조직하고 동원해내는 유능함이었다. 이 기계는 가능성으로 가득한 청년들을 무기로 바꾸어냈다. 그리고 그 일은 일본 사회 뿐만 아니라 지구상 어느곳에서든 조건만 갖춰지면 다시 해낼 수 있다. 그것이 나를 가장 두렵게 했다.

일본의 행태에 분노한다. 그러나 나는 한국의 행태에도 분노한다.

지금 한국은 이 신사를 도덕적 규탄의 대상으로만 소비한다. 정작 그 규탄이 가리키는 것 ‘능력의 결여, 국가 건설과 동원과 산업화의 실패’는 보려 하지 않는다. 오해를 막아두고 싶다. 일본의 침략이 한국이 약했기 때문이라고 단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약자를 탓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누가 내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는데, 그 순간에 당위를 따질 것인가. 총이 겨눠지기 전에, 어떻게 그 상황 자체를 마주하지 않을 것인가를 이해하는 것.그것이 먼저여야 한다.

선조들의 희생과 피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배우고 생각하고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놓친 것이 무엇이었는지.

90학번이다. 1987년에 직선제 개헌이 이뤄진 마당에 대통령 노태우의 존재는 훼손이 있었긴 해도, 어쨌든 그는 직접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었다. 노태우를 찍은 아버지 세대의 한 표도 김대중을 찍은 내 세대의 한 표만큼이나 소중한 것이다.

노태우 정부가 시행한 정책들은 의외로 진보적인 구석이 많았다. 최초의 경제 민주화 정책들이었다. 북방외교로 요약되는 외교정책도 꽤 혁신적이었다. 무엇보다 1989년 12월에는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부부가 처형되고 1991년 8월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운동권 학생들은 물론이고 당대 학자들도 그때 상황을 해석하고 감당할 준비가 안 돼 있었다.

자산과 부채가 마구 엉켜 있는 1980년대 학번들과 달리 1990년대 이후 학번은 깨끗한 대차대조표로 출발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상처받았고 2000년대 초반 부동산 랠리로 한 번 더 상처받았지만 1990년대 이후 학번은 독재에 부역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고, 군대를 빼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고, 부동산 편법 거래를 하고 싶어도 돈이 없었다. 하물며 친일? 엑스재팬 듣고 일본 드라마 보고 유니클로 산 걸 친일이라고 말한다면, 그게 아마도 그들의 유일한 친일 행적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 경제정책과 외교정책의 편익과 비용을 따지지 않고 이런 의견을 가지면 친일이고 저런 말을 하면 토착 왜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을 잘 기억해둬야 한다. 위선자들이다.

<마음속에 바람이 생기자 운명의 바람이 불었다-김동조>


박물관을 나오며 다음 질문이 시작됐다. 독일은 수도 한복판에 유대인 추모비를 세웠는데, 일본은 수도 한복판에서 자신들의 전쟁을 자랑한다. 왜 이렇게 다른가.

그러나 그것은 이 글이 감당할 질문이 아니다. 뉘른베르크와 베를린과 아우슈비츠, 그리고 야스쿠니와 유슈칸. 그 비교는, 다음 글로 미룬다. 그리고 무엇을 배울 것인지. 일본과 한국은 어떻게 미래를 그려나갈지에 대한 생각도 곧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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